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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아동 문학을 소개합니다. 어른에게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동 문학을 통해 우리 아동 문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문학 속에 깃든 아이들의 마음과 어른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기자말>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역시 아이들은 공감하고, 어른들은 고민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이제는 우리 아동 문학계의 거장이 된 유은실이 이 작품을 쓴 때는 20년 전이다(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리커버판이 2025년 1월 출간되었다). 그녀가 쓴 첫 동화책이었다. 헌책방에서 사 모은 40여 권의 린드그렌 동화책이 보물 1호라는 그녀는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 '비읍이'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현실을 책에서 위로 받고, 책을 통해 성장했을 그녀의 어린 시절이 책의 말미에 내밀어 둔 글쓴이의 말을 통해 그려진다. 린드그렌 덕분에 행복했을 비읍이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책침대에서 눕고 자고 행복했을 유은실, 그리고 이 작품을 쓰며 행복했을 어른 유은실, 누가 뭐래도 문학은 행복을 만드는 힘이 있다.
비읍이의 목소리, 비읍이의 마음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의 서술자는 주인공 초등학교 4학년 소녀 '비읍'이다. 이름이 비읍이라니 특이해도 너무 특이하다. 비읍이의 이름은 아빠가 지어주신 것인데, 아빠가 한글을 처음 배웠을 때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기역에서 미음까지 밖에 몰랐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가서 비로써 비읍 다음을 알게 되고, 그날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그래서 비읍이라는 이름에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비읍이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주 자기 감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사랑하는 린드그렌 선생님께 편지를 쓸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말로 편지를 썼고, 주소도 모르기 때문에 부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비읍이의 성장 방식이다.
"린드그렌 선생님, 세상에 책을 산다고 야단 맞는 어린이는 저 뿐일 거예요. 정말 쓸쓸한 일이에요."
자전거 살 돈으로 린드그렌 책을 왕창 사버리는 비읍이를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비읍이는 또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 줄 것 같은 린드그렌 선생님이 있기에 비읍이의 하루하루는 다시 평안으로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책을 읽어주지 않는답니다. 그렇다고 나쁜 엄마는 아니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 주거든요. 우리 엄마는 정말 요리 솜씨가 좋아요."
비읍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싫고, 린드그렌 책을 못 사게 하는 엄마 때문에 속상하지만 아빠 없이 자신을 키우고 집안을 지켜야 하는 엄마를 이해하는 아이다. 비읍이의 고운 마음이 이야기 곳곳에서 전해진다.
비읍이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할머니랑 단 둘이 사는 지혜랑 단짝 친구다. 지혜가 사촌들에게 얻은 너무 큰 운동화를 신고 온 날, 장난꾸러기 지호가 놀리는 말에 이렇게 말한다.
"너, 이게 스웨덴에선 최신 유행인 거 몰라? 린드그렌 선생님 책에 보면 나온다고, 삐삐라는 애는 일부러 큰 신발을 신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새로 산 장화를 신고 물웅덩이에서 뛰고 싶은 마음도 접는다. 절친 지혜를 위해 자기 장화에 구멍이 났다고 거짓말을 한다. 어른들이건 아이이건, 비읍이처럼 고운 거짓말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큰 운동화를 신고 오는 지혜의 마음을 이해하고, 새 우비랑 장화를 보고 마음이 아플까 생각하고, 물웅덩이에서 뛰는 아이들을 보면 부러울까 생각하는 마음. 타인을 생각하는 이 고운 마음들을 어른인 우리는 종종 지워버린다.
비읍이는 엄마가 린드그렌 책을 갖다 버리라고 한 날, 가출을 결심하지만 혼자 남을 엄마가 너무 쓸쓸할까 봐 포기한다. 그리고 린드그렌 선생님이 왜 가출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썼을지 곰곰이 생각한다. 비읍이의 결론이 가슴을 울린다.
"린드그렌 선생님은, 가출하는 애들 얘기를 재미있게 읽고, 가출하고 싶으면 머릿속으로 가출하는 상상을 실컷 해서 '왼쪽 가슴 아래쪽이 무엇에 세게 부딪힌 것처럼 아픈 것'을 낫게 한 다음에, 진짜 가출은 하지 말고, 자기 잠옷 입고 자기 침대에서 양말 벗고 자라고 쓰신 것이었다."
문학이 독자를 향해 보내는 위로가 여기에 있었다. 아동 문학이 어린이를 향해 보낸 격려가 여기에 있었다. 작가 유은실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은 우리에게 현실을 극복할 힘을 준다.
린드그렌의 책들
비읍이는 자신의 생일날 노래방에서 이모와 엄마가 부르는 삐삐 영화 주제곡을 들으며 삐삐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만큼 독서 흥미가 생긴 것이다. 비읍이는 책을 읽으며 울 뻔한다. 삐삐가 이따금 엄마가 있는 하늘에 대고 손을 흔들며 "엄마, 내 걱정은 마세요. 난 잘하고 있으니까"라고 말하는데, 아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비읍이는 그렇게 삐삐의 마음에 공감하며 린드그렌의 책에 빠지기 시작한다.
<꼬마 백만장자 삐삐>를 읽으며 삐삐처럼 백만장자가 되어 엄마의 대출금을 갚는 상상을 하고,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를 읽으며 뭐든지 할 수 없는 자신을 이해하고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에밀은 사고뭉치>를 보며 장난꾸러기 친구 지호의 마음을 알게 되고, '펠레의 가출' 이야기를 생각하며 가출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깨닫는다. <산적의 딸 로냐>에서 페르 영감이 죽는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작별 인사도 못하고 떠난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빠가 없어서 나쁘다는 생각만 해왔는데 말이다.
비읍이는 이렇게 린드그렌의 책으로 자랐다. 때로는 책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때로는 책의 이야기에 속상해하며 어른이 되어 가는 길을 찾는다. 비읍이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책이 생각을 다져주고, 책이 마음을 넉넉히 키워줄 것이다. 비읍이를 보며 우리도 자란다.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조금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게 언니와 비읍이
'그러게 언니'는 비읍이가 알게 된 헌책방 언니의 별명이다. 비읍이가 하는 말을 '그러게' 하며 잘 들어주어서 비읍이가 붙여주었다. 그러게 언니는 린드그렌의 엄청난 팬이다. 린드그렌 책을 구하러 헌책방을 다니다가 어른이 되어 헌책방 주인이 되었단다.
그래서 비읍이에게도 린드그렌 책을 싸게 구해주고, 함께 책 이야기도 나눈다. 비읍이에게는 최고의 친구이자 상담 선생님이다. 비읍이가 린드그렌 책 때문에 엄마와 다투고 가출한 날 그러게 언니는 비읍이의 하소연을 다 들어주고 엄마께 편지를 써주며 비읍이를 돌려보낸다.
"비읍이 어머님, 죄송합니다. 비읍이를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늦게까지 집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밥 먹일 생각만 하고 어머님이 걱정하실 거라는 짐작을 못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비읍이가 참 좋은 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딸을 두신 어머님이 부럽습니다."
그러게 언니의 편지 덕분에 비읍이는 그 뒤로 린드그렌 책을 마음껏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학교에서 일기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었을 때도 그러게 언니는 진심 어린 충고를 한다.
"이 말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는데…… 학교에 내는 일기장에 속마음 다 털어 놓지마. 그러면 또 마음 아플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정말 깊은 얘기는 비밀 일기장을 따로 만들어서 썼으면 좋겠어. 우리 비읍이한테 언니가 이런 걸 가르쳐서 어떡하니. 너는 정말 솔직하고 좋은 아이라서…… 마음 아플 일이 많을까 봐…… 내 마음이 아프구나."
그리고 또 그러게 언니는 비읍이에게 산타할아버지가 가짜라는 이야기도 해준다. 비읍이에겐 매년 엄마가 좋아할 선물만 하고, 지혜에겐 선물도 안 해주고, 그러게 언니의 어린 시절에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산타할아버지가 약한 아이들을 때리고 다니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언니, 내 마음에서 뭐가 깨지는 것 같아."
"우리 비읍이가 쑥쑥 크는구나. 가슴속 구슬이 그렇게 하나하나 깨져 나가면서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럼 언니는 마음에 구슬이 하나도 없어?
"아니, 다 깨지고 단단한 진짜배기 구슬만 남았지."
진주조개는 자기 몸에 들어온 이물을 끌어안고 영롱한 빛을 발하는 진주를 만들어낸다. 진주를 만드는 조개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랄 것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거름 삼고, 눈물을 샘물 삼아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 곁에 그러게 언니처럼 좋은 어른으로 서 있고 싶다.
어른은 아이가 되고, 아이는 어른이 되게 하는
비읍이는 거짓말을 잘한다. 천연덕스럽게 하는 거짓말에 순진한 아이들은 넘어가지만, 어른들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엄마가 '딸을 위한 휴가'를 받아서 시민 공원 스케이트장에 가기로 한 날, 비읍이는 또 거짓말을 한다. 방학 내내 할머니랑만 있을 것 같은 지혜를 함께 데리고 가자는 엄마의 말에 전화기를 들고 거짓말을 시작한다. 지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 친구가 스케이트장에서 일해서 공짜로 갈 수 있다고 거짓말하고, 엄마 친구를 위해 스케이트장 밥을 팔아줘야 하니 도시락도 필요 없다고 거짓말하고, 동전 쓸 일이 없어서 엄마 지갑이 너무 무거우니 버스비도 안 가져와도 된다고 거짓말을 하며 지혜를 부른다.
이럴 땐 아무리 거짓말을 잘해도 엄마가 화를 내지 않으신다. 이날, 비읍이의 엄마는 정말 신나게 스케이트를 탄다.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춤을 추듯 스케이트를 탄다. 비읍이는 엄마가 완전히 아이가 되어 있었다고 느낀다.
스케이트가 비읍이의 엄마를 아이가 되게 했던 것 같이 아동 문학은 어른을 아이의 세계로 이끈다. 아이의 마음이 되어 느끼게 하고, 아이였던 그때로 돌아가 시간이 씌워 놓은 묶은 쓸쓸함과 아픔을 벗겨내게 한다. 다시 돌아와 어른으로 살아가야 할지라도 그 시절의 행복한 숨을 맛보았기에 호흡은 훨씬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비읍이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린드그렌 선생님께 마지막 편지를 쓴다. 린드그렌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꼭 보고 싶어서 스웨덴 갈 돈을 모으던 비읍이에게 린드그렌 선생님의 부고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읍이는 그러게 언니의 말처럼 선생님이 '낭길리마'에 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하늘나라와 낭길리마가 가까워서 선생님과 아빠가 만나 책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이제 '스웨덴에 가서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구슬'을 깨뜨렸으니 골프선물세트 편지도 그만 쓸게요. 편지를 쓰지 않고 슬픔을 이기기로 결심했답니다."
더 이상 라임오렌지 나무 밍기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작별하게 되었던 제제처럼 비읍이는 조금 더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비읍이가 어른이 되는 길에 함께 하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동화가 우리 아이들이 가는 길에 잊지 못할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빛이 난다. 아이들의 마음속에서도 오랫동안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잠깐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행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이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감동을 주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을 보여 유은실 작가의 여전함을 기원하게 된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에는 스웨덴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이 여러 편이 소개되어 있다. 린드그렌의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읽은 독자에게는 어린 시절 읽었던 책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의 목차까지 린드그렌 동화의 제목으로 설정해 두었는데 주인공 비읍이의 이야기와 찰떡같이 맞는다. 첫 번째 이야기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에서는 엄마가 하늘나라에 있는 삐삐와 아빠가 하늘나라에 있는 비읍이가 대비되며 명랑하지만 마음속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며 자라는 비읍이의 캐릭터가 부각된다.
문학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서술자의 위치 즉, '시점'은 독자가 느낄 감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이야기를 전해주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 같이, 서술자가 주는 특별한 분위기가 작품의 배경이 되어 독자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인물 바깥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을 때 독자는 주인공의 처지를 좀 더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볼 수 있다. 이야기가 가진 세계관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주인공일 때 독자는 좀 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많이 읽게 되면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서술자가 아이일 때 어린 독자들은 작품에 훨씬 더 몰입한다. 특히 자신과 같은 또래의 주인공을 만나면 공감이 배가 된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주인공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서술자가 어린이인 동화를 만났을 때 어른 독자들은 엄마의 마음이 되고 아빠의 마음이 된다. 마음으로 주인공 아이를 다독이고, 어루만지고, 반성하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